캄보디아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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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또는 왓으로 발음)는 Siem Reap 주변의 310평방Km나 되는 광활한 평원에 1,000개 이상의 건축물로 구성된 대 유적지이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종교적 건축물로써 그 규모와 사원의 숫자가 단일 최대의 유적지이다. 1977년에 폴포트도 말하기를 "우리 민족이 앙코르를 건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하며 국민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 시켰다. 이 유적지는 1860년에 프랑스의 자연과학자 "앙리 모헤"가 발견하였다고 하나 사실 크메르인들은 옛날부터 종교적 사원으로 숭배하고 또 방문하고 있었다. 또 중국, 일본 및 그 외 세계의 많은 고고학자들이 방문하였으나 충분한 자료와 기록을 유럽에 전파한 사람이 "앙리 모헤"였다. 1898년에 국제적인 앙코르 보호 단체가 발족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아시아문화 연구단체인 EFEO는 1908년부터 앙코르 유적지의 보수를 시작하였다.
1933년에 앙코르와트는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품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고 "우선 보존 세계유물" 명단에 오르게 된다. 또 같은 해에 유적 보존사업 국제 협력 위원회가 발족하여 유적지 전체를 국제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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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위원회는 캄보디아 정부와 20여 개국의 대표단으로 구성되었다. 1993년 12월에 개최된 첫번째 회의에서 프랑스와 일본의 대사가 공동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주관하였고 UNESCO가 사무국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1995년에 캄보디아 정부는 APSARA라는 명칭의 주관 부서를 발족하여 앙코르 지역의 보안, 개발 및 복구를 담당하고 또 감시하는 임무를 맡겼다. 앙코르를 중심으로 한 광활한 천수답의 농민들은 이 개발사업의 혜택으로 불규칙한 비에만 의존하던 천수답 농사에서 수자원 관리에 의한 관개 농사만을 할 수 있게 통제를 받게 되었다. 수자원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앙코르 유적지의 경사나 함몰 등이 더 빨리 진행될 것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유물의 도난도 앙코르의 중요한 문제이다. 많은 유물이 도난 당하였고 또 유적지 이외의 곳에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것도 많이 있다. 왕궁을 비롯한 기타 크메르의 공공 건물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앙코르 와트만은 예외이다. 힌두교에서는 동쪽은 생명을 뜻하고 서쪽은 죽음을 뜻한다. 따라서 앙코르 와트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원이었으므로 출입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앙코르사원은 거의 모래돌과 벽돌 및 황토로 축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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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건축재료는 그 지역 주변이나 PHNOM KULEN에서 운반된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내구성이 약한 재질로 지어진 건축물들은 거의 파손되고 없어지는데도 이 유적지는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건축물의 규모와 재질이 그 소유자의 계급이나 신분을 의미하였다. 대다수의 다른 건축물들이 목재로 지어졌으나 거의 썩어서 없어지고 말았다. 남아있는 목조건물이 없으므로 그 당시의 크메르 문화와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다. 대부분의 크메르 예술의 종교적, 정신적 의미나 사상은 인도에서 건너왔다고 본다. 춤추는 천사와 무녀(APSARA)로 벽을 장식한 많은 사원들이 앙코르 사원의 장관이며, 다른 사원에서는 힌두교의 쉬바, 비쉬누 그리고 브라마 상들을 볼 수 있다. 또 나가스(7개 뱀머리를 한 물의 신)와 가루다(나가스의 적으로 거대한 새) 등의 숭배물도 가끔 볼 수 있다. 앙코르 제국은 1353년 시암족(지금의 태국)에게 정복을 당한다. 이후 4세기에 걸쳐 크메르 민족은 시암족과 챰족(지금의 중부 베트남 지역)의 침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불운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도읍지를 지금의 프놈펜 근처로 옮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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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의 또 하나의 명물은 주변의 밀림에 있다. 주변에, 특히 ANGKOR THOM을 따라 많은 흰색의 낙엽수 거목들이 있다. 앙코르 톰의 동쪽문 (승리의 문)에서 바깥으로 1Km쯤 되는 시엠립강 근처에 조그만 산림청 사무소가 하나 있다. 주변에는 불에 그을린 나무와 밑둥이 잘려진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현지에서 "피팅"이라고 부르는 작업으로써 나무의 송진을 녹여내는 것이다.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구멍에 불을 지펴서 송진이 흘러나오게 하고 그 송진을 똔레삽 호수에 있는 배들의 방수용 도료로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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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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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은 고대 크메르 제국의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앙코르 유적이 주를 이루지만 푸난과 첸라 왕조의 유적도 일부 전시하고 있으며 총 5천 여종에 달한다. 앙코르 유적지 현지에서 제대로 관리가 안되어 국립박물관에 옮겨다 놓은 것도 많이 있다. 붉은 갈색의 크메르 전통 건축인데, 프랑스인이 설계했다고 한다. 정원도 아주 아담하면서도 정갈하게 느껴진다. 정문은 10세기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의 문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나무문 자체의 무게가 1톤이 넘는다고 한다. 이 건물은 폴 폿 시절에 그대로 방치되어 유물들도 많이 파괴되었고, 건물자체의 훼손도 심각하였다. 이 시기에 박쥐들이 건물에 수백만마리가 모여들었는데, 얼마전 까지만 해도 저녁이면 박쥐들이 지붕안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장관을 볼 수 있었으나 2002년 3월 박물관의 천장과 지붕을 보수하면서 박쥐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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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얼 슬렝 박물관 Toul Sleng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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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에서는 무엇보다 뚜얼 슬렝 Toul Sleng 박물관을 가봐야 한다. 입장료는 2$이다. 이곳은 원래 뚜얼슬렝 쁘레아 고등학교 였던 것을 크메르루즈가 제 21 보안대 본부 건물로 바꾸어 사용한 곳으로, 전 정권의 관리들에 대한 심문장소와 고문장소, 그리고 나중에는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크메르루즈 통치 기간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2000만명이 들어가서 불과 6명이 살아 나온 악명높은 장소였다. 킬링필드 기념탑(오토바이로 시내에서 약 1시간거리-프놈펜 근교의 쯔응아익에 있음)을 방문하기 전후로 하루에 모두 둘러보면 된다. 이곳에서 75년 4월 - 79년 1월 사이에 있었던 폴 폿 Pol Pot의 만행과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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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링 필드 Killing Fiel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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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응 아익 Cheoung Ek'은 프놈펜 근교와 뚜얼 슬렝의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한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어 있는 것이 이곳에서 1980년에 발견되었다. 총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쇠막대기, 팜 나무 줄기 등을 이용해 처형을 했다고 한다. 사실 킬링필드에는 큰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보여지는 집단 학살 장소들이 숙연하게 만드는 곳이다.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위령탑은 폴폿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훈센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여m의 탑을 만들어 해골을 전시한 곳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도들인 캄보디아인들은 훈센의 이러한 행위를 좋지 않게 여기는데, 불교도들은 화장하지 않고 그렇게 두면 그 영혼이 극락으로 가지 모하고 구천을 멤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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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기념탑 Victory Monu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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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했다. 독립을 기념하여 앙코르 왓의 중앙탑을 본따서 독립기념탑을 만들었다. 노로돔 거리 Norodom Blvd와 시하눅 거리 Sihanouk Blvd가 교차하는 로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국기가 독립 기념탑 주변에 휘날리고 있다.
저녁에는 은은하게 조명등을 밝혀 아주 멋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별로 조명빛이 없는 프놈펜 거리에서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건물이다. 독립기념일 같은 주요 국가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독립기념탑 근처에는 인공기를 게양한 북한 대사관을 볼 수 있고, 그 맞은편에 한국식당인 소나무 식당이 있다. 소나무 식당 옆에 있는 거리카페(?)의 과일주스가 아주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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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 프놈 Wat Phn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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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프놈은 27m 언덕 위에 있는 절로 '프놈펜'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큰 물난리가 났을 때 펜이라는 여인이 강가로 떠내려온 부처상을 발견하여 이 절에 봉안하였는데, 이 여인의 이름과 사원의 이름을 합쳐서 지은 이름이 프놈펜이다.
절 안에는 조명이 돌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의 머리 뒤에 있는 후광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후광은 원래 이란의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가 인도 북서 지방 간다라 지방에 전파되면서 부처의 머리 뒤에 태양을 받치기 시작했으며 또 이전에는 불상이 없었으나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의 조각 기술이 간다라 지방에 전파되어 자연스레 불상 조각이 시작된 것이다. 불교에서 흔히 서방 정토 극락세계라 함은 불교가 매우 번성했던 이 간다라 지방을 뜻하고 서유기의 삼장 법사가 불경을 가지러 갔다는 서역도 이곳을 뜻한다). 북쪽에는 중국식의 절인 아낙따 쁘리아 차오Anakta Preah Chao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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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최대의 해변 도시인 씨하눅빌은 프놈펜에서 가까워 주말관광지로 인기가 높으며, 여행자들에게도 앙코르 유적의 사원이 주는 웅장함을 뒤로하고 해변에서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곳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해변도시답게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1950년대 항구도시로 개발된 이래 60년대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씨하눅빌이란 지명은 70년대 국왕인 씨하눅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으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던 지명은 꼼뽕 쏨 Kompong Som으로 불리우고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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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쯔띠알 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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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해변을 갖고 있는데 해변의 북쪽은 세린디피티 비치 Serendipity Beach 라고 별도의 이름이 붙여져 있으나 한 개의 해변으로 봐도 문제가 없다.
해변을 구분하는 경계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세렌디피티 비치에는 서양 여행자들이, 오쯔띠알 비치에는 캄보디아인들이 많다.
숙박 시설로 세렌디피티 비치가 다양하고 저렴한 숙소들이 있는 반면 오쯔띠알 비치의 해변도로에는 고급 호텔과 대형 식당들들이 들어서 있어 상대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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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 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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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하눅빌에서 여행자 숙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웨더 힐 스테이션 (몬띠 오또니욤) Waether Hill Staion 과 인접하고 있어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오랜동안 알려져 있던 해변으로 지금도 유명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여행시설을 이용하며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자들이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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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돌키리·크라치에 농장은 지금 시작 지점
지금부터 발전하는 지역입니다. 3,300만평(10,000 ha)의 장기 차익권을 확보, 커피 재배를 통해 몬돌키리의 건전한 발전을 실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고용인원 10,000명을 실현하여 이 지역에 학교, 병원, 영빈관(숙박시설)등의 인프라 정비를 하여 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 계획에 뜻이 있는 분들은 오너 제도에 참여하셔서, 여러분의 도움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게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